심야괴담회 시즌3 93화 두 번째 이야기는 운수대통입니다.
살다 보면 찾아온다는 인생최악의 시기가 있기 마련이죠 사연의 주인공인 이영준(가명)씨가 2년 전 취업준비생 시절 한 아주머니를 만난 뒤 겪었던 일에 대해 보내주신 이야기입니다.
나의 취준생 생활
한 해면 끝날 줄 알았던 취준생 생활이 3년 넘게 계속되자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불교신자였던 전 답답한 마음에 종종 집 근처에 있는 절을 찾아가곤 했어요. 그날도 조용한 법당에 혼자 몇 번이고 엎드리며 제발 올해는 취업 좀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드렸었죠.
하지만 간절한 만큼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게 다 뭔 소용인가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한숨 푹푹 쉬며 돌아 나오던 때였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절 쳐다보고 계시더라고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말을 걸어왔습니다.
"총각! 젊은 사람이 많이 힘들지? 에이구 어쩜 귀한 자손 돌봐줄 조상신이 하나 없어?"
듣는 순간 이제 하다하다 사이비종교가 절에서까지 포교를 하나 싶었죠. 약간 짜증스러운 마음에 여기서 이런 거 하시면 안 된다며 한소리 하고는 자리를 뜨려 했죠. 그런데 아주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백날 여기서 기도해 봐야 총각은 안 돼!"
아주머니의 염주
평소에 저라면 대꾸도 안 하고 돌아섰을 겁니다. 하지만 그땐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던 제 인생 최악의 시기였거든요. 제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그럼 뭘 어쩌란 말이냐 했더니, 아주머니는 자신이 만든 염주라며 딱 1주일만 차고 있어보라며 제 손에 끼워주셨습니다.
"총각이 너무 딱해서 잠깐이라도 편하게 살라고 주는 거야. 일단 차고 나면 씻을 때고 잘 때고 몸에 꾹 지니고 있어! 그럼 금방 운이트일거다"
확신에 찬 어투로 말씀하시길래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염주를 차고 돌아왔습니다.
트이기 시작하는 운세
며칠 후, 친구 따라 인생 첫 투자로 코인 100만 원어치를 샀었는데 그게 1,000만 원 정도의 수익으로 확 터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그다음 날에는 제가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 합격메시지가 도착하더라고요.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기자 진짜 이 염주가 효과를 본 건가라는 생각에 아줌마 정체가 뭔지 궁금해졌습니다.
"아유 거봐 내가 총각이 너무 딱해서 도와준 거라니까! 이제 내 말 좀 믿겠어?"
저를 기다렸다는 듯 절에서 다시 만난 아주머니는 염주 가지고는 꼬인 팔자 풀기 힘들다며 이번엔 다른 방법을 알려 주겠노라 하시더라고요. 좋은 조상신을 다시 곁에 두려면 자기가 알려주는 걸 한 달 동안 빠짐없이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더라고요. 들어보니 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이번 기회에 꼬인 팔자 한번 풀어보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꼬인 팔자 풀기
첫째, 자정이 되면 생쌀을 가득 담은 밥그릇에 마른 향을 꽂아두고 두 번 절을 올릴 것
둘째, 아침까지 제사상을 그대로 둘 것
셋째, 조상신의 기운과 부처님의 기운이 섞이지 않게 절대 절을 찾지 말 것
"무슨 일이 생겨도 세 가지는 한 달 동안 꼭 지켜야 돼 꼭 알겠지?"
아주머니의 당부를 새기며, 그날 밤부터 제 침대 옆 책상 앞에 작은 상을 마련해 두고는 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흘쯤 지났을 때, 그날도 역시 자정에 제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들리는 거예요.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새하얀 버선을 신은 발이 보였고 한복치마가 나풀거리고 있었습니다. 위를 쳐다보니 허리선 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반신만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죠.
순간 까무러치게 놀란 저는 소리를 지르며 불을 켜버렸어요.
잘못 본 것인지 그 자리에 남은 건 제가 차린 제사상뿐이었죠. 헛것을 봤구나라고 그날은 그냥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괴이한 형상
다음날 밤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누군가의 형상이 아른거리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지난밤 보았던 치마의 하반신이 아닌 형형색색의 저고리를 입은 여자는 제사상 쌀그릇 쪽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정신없이 생쌀을 씹어먹고 있었습니다. 기괴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신음이 튀어나온 순간 여자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제 쪽을 바라봤습니다. 생쌀을 가득 담은 입은 선명히 보이는데 눈과 귀, 코가 있어야 할 자리는 까맣게 뚫려 있었습니다.
여자는 제 코앞까지 기어 오더니 저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잘 먹었어..."
그 기괴한 형체는 1주일에 두어 번씩 밤마다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자서일까요? 저는 어딘지 모르게 수척해져 갔습니다. 그런 저와 다르게 괴형체는 하반신만 있던 모습에서 상반신이 보이기 시작했고, 입만 있던 얼굴에도 코와 귀가 생겨 있었어요. 너무 찝찝한 기분이 들어 지금이라도 제사상 차리는 거 멈출까 싶었지만 한 달을 꼭 버텨야 한다던 아주머니의 당부가 떠올라 그럴 수가 없겠더라고요. 게다가 입사 후 좋은 부서의 배치를 받아 이제 좀 일이 잘 풀리려나 보다 싶었던 저는 조금만 더 참고 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제사상을 계속 차렸습니다.
제사의 막바지
아주머니와 약속한 한 달을 이틀 남긴 어느 날 전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결국 회사에 병가를 내고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있었는데요. 깜빡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벌써 창밖이 깜깜하더라고요. 이미 자정이 넘었지만 늦더라고 지금이라도 상을 차려야겠다 싶어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데 어디선가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고개를 들어보니 저는 그제야 여자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었어요. 특이한 모양의 칼을 든 채 넋이 나간 듯 제자리를 뛰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의 모습은 누가 봐도 조상신이 아닌 무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잠시 뭔가에 홀린 듯 여자의 모습을 넋 놓고 보던 그때
여자가 "내 밥 어딨 냐고" 괴성을 지르는 겁니다. 그런데 얼굴이 이젠 입도 코도 귀도 생겼는데 딱 하나 눈만 없는 겁니다. 그런 얼굴로 바들바들 떨고만 있는 제게 그러는 거예요.
"괜찮아 조금 있으면 나 너 먹을 수 있거든"
제 귓가에 알 수 없는 말만 남기고 여자는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 길로 쌀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가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습니다. 이건 절대 나를 위한 제사가 아니다 생각한 거죠. 전 부리나케 절로 향했어요. 아줌마를 만나 대체 나한테 뭘 시킨 거냐 따져 물어야겠다 싶었거든요.
염주의 정체는?
"그 더러 운 걸 가지고 어딜 들어가!"
법당 안으로 들어섰는데 한 70년 넘어 보이는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께서 절 매섭게 노려보시며 호통을 치시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하던 순간
"네 팔에 찬 그거! 그거 당장 이리네!"
할머니는 제가 말릴 새도 없이 제 손목에 있던 염주를 빼앗아 가셨어요. 그런데 염주를 찾던 손목 주변에 온통 검 붉은 핏자국처럼 뭐가 잔뜩 묻어 있더라고. 분명 염주를 차고 샤워도 하고, 밖에도 멀쩡히 돌아다녔는데 말이죠 이게 뭐지? 순간 벙진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할머니께서는 자기 몸 내어주고 제사상까지 차리는 한심한 놈이 어딨냐며 혀를 차시더라고요. 뭐라 대답도 못하고 있던 그때였어요. 아주머니가 나타나 법당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시더라고요.
아주머니의 목적
"염주 어딨어? 어딨 냐고! 한 달을 못 참아서 절로 기어 들어와? 이 썩을 놈 네가 니 복을 발로 차?"
정말 악담이란 악담은 다 하는 겁니다. 제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데
"이런 고약한 것 같으니라고 어디 그런 잡것을 남의 집 귀한 자손한테 떠넘기려 들어!"
할머니가 영준 씨를 가로막고 한마디 하시자 조금 전까지 역정을 내던 아주머니가 몸을 사시나무 떨릴 듯 떨기 시작하는 거예요. 할머니는 아주머니에게 계속 매섭게 소리쳤습니다.
"니 자식 귀한 줄 알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야지 왜 너네 대에서 끝나야 될 걸 남의 자식한테 넘기려고 해!"
아주머니는 매섭게 할머니는 쳐다보다 몸을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더니, 안 사주면은 떼쓰는 것처럼 발을 바닥에다 허우적대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아니 하루면 되는데! 하루면 되는 거를 이렇게도 불쌍해서 어쩌냐.. 어디서 또 저런 애를 찾아?"
이러면서 우는 거예요.
할머니께서는 제 손을 잡고 법당 문가로 끌고 나가셨습니다. 얼른 문가에 놓인 신발을 신으려는데
"사람 사는 게 원래 그런가보다 하고 마음 강하게 먹고살아야 해.. 딱한 내 새끼"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과 따뜻한 목소리의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이게 뭔가 내가 정신이 이상해졌나 한참을 생각했어요.
나의 제사상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저는 또 한 번 제 방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방에 들어갔는데 테이블에 흰 그릇에 쌀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분명 정리해서 버렸는데 왜 이게 그대로 있는 건지 그리고 제 증명사진 하나를 제가 항상 지갑에 넣어놓고 다녔었는데 그 한 장이 테이블 쌀밥 그릇 앞에 놓여 있더라고요.
이게 내 제사상이었구나.. 내가 뭔가 이제 내가 죽어가야 내 기운을 뺏어서 그래서 나중에 눈까지 생기면 완벽하게 내가 뭔가 지배당하는 거 아니었을까? 이 생각을 하게 되니 너무 무서웠습니다.
만약 하루를 남기고 멈추지 않았다면 제 영혼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달 동안 제가 차린 건 저의 제사상이었던 걸까요? 여전히 그때의 일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운수대통_그 후의 이야기
낯선 사람들이 준 거 뭐 받으면 안 되고 중고 물품도 함부로 집에다 들리면 안 된다는 말이 있죠 영준시의 경우 너무 절실할 때니까 받은 거 같은데, 간절함을 이용하는 아주머니 같은 분이 제일 악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픈 사람들한테 약이라면서 파는 돌팔이들처럼 말이죠 영준 씨가 아플수록 귀신이 점점 형체가 생겼었는데 귀신을 영준 씨에게 보내면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걸까요? 그 아주머니는 무당 쪽이셨고 주변에 잡신들이 많이 있어서 이거를 되물림되는 신내림을 이제 자손들한테 물려주기 싫어서 영준씨에게 떠넘기려고 했던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영준 씨는 그 팔찌를 푼 이후에는 건강을 회복하셨다고 합니다
심야괴담회 시즌3 93화 운수대통은 총 33개의 촛불이 켜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