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괴담회 시즌3 94화 세 번째 이야기는 이번 이야기는 익명으로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편의상 제보자 이름은 원이 씨로 하겠습니다.
1999년 제보자 김원이(가명)씨가 직장에서 겪었던 사연으로 제보자는 직장동료 미진씨에게 벌써 20년 넘게 생명의 은인 대접을 받고 있다는데요. 두 사람 사이엔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금부터 원이 씨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친절하고 당당한 미진 씨
1999년 저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공부를 시작해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시골의 작은 병원에서 첫 근무를 하게 됐는데요.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렀지만 환자들을 향한 열정만큼은 뒤지지 않았는데..
"미스김! 어딨 는 거야!!"
그런 제 의욕을 자꾸만 꺾어버리는 환자가 나타났습니다.
끊임없는 자잘한 심부름 요구와 사소한 일에 꼬투리를 잡으며 고성은 기본으로 장착한 진상환자였죠.
"내가 누군지 알아?"
그날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환자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던 그때
"누구신지 당연히 알죠! 동네에서 소문 자자한 진상 환자시잖아요! 여기 호텔 아니고 병원이거든요!"
진상 환자를 단번에 제압한 사람은 우리 병원에 없어서는 안 될 친절한 미진 씨였습니다.
평소엔 사근사근 다정하다가도 부당한 일은 누구보다 먼저 발 벗고 나서는 걸크러쉬의 대명사였죠. 나이는 저랑 동갑이지만 경력은 훨씬 오래된 베테랑 간호사라 정말 든든한 엄마 같은 존재였어요.
미진 씨의 이상한 변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미진 씨가 대기실 한쪽에 앉아 입술에 빨갛게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거예요.
평소 짧은 단발머리에 화장기 하나 없는 민낯으로 다니던 미진 씨였기에 이런 모습은 정말 처음 봤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좀 놀랐지만 왠지 물어보면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대수롭지 않은 척 넘겼습니다.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인 줄도 모르고요.
며칠 후 미진 씨는 아무런 연락 없이 무단결근을 했습니다. 혼자 사는 미진 씨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저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어요. 초조하게 신호만 울리는 소리만 들리길래 포기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던 미진씨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내가알던 미진씨 목소리가 아닌 거예요.
"잘못 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당황해서 얼른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나.. 맞아"
낯선 목소리로 미진 씨가 말했습니다. 조금 피곤해서 요즘 좀 과로했는지 몸이 안 좋다는 거예요. 그렇게 아팠는데 옆에서 눈치도 못 채다니 그것도 모르고 미진 씨에게 도움받기만 했던 제가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근무가 없는 주말 깜짝 병문안을 가기로 했죠.
미진씨집으로의 병문안
집 앞에 도착해 벨을 누르자 집에서 나온 사람은 긴 생머리에 화려한 목걸이를 한 처음 보는 여자였어요.
"제가 집을 잘못 찾았나 봐요. 죄송합니다."
"원이 씨 어디가? 나 맞아 "
당황한 저는 찬찬히 얼굴을 살펴보았습니다. 얼굴은 분명 미진 씨가 맞는데 화장이 너무 진하고 짧은 단발머리가 갑자기 허리까지 길어져서 마치 낯선 사람 같았습니다.
"미진 씨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 요즘에 자꾸 이런 스타일이 맘에 드네 그나저나 너무 반갑다 어서 들어와!!"
좀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집으로 따라 들어갔어요 그런데 집안 상태가 정말 난장판인 거예요 당황한 저와는 달리 미진 씨는 태연하게 먹을 걸 가져오겠다며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곤 동그란 옥춘을 접시에 산더미처럼 담아 들고는 허겁지겁 손으로 집어먹으면서 걸어오는데 미진 씨의 낯선 모습에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옥춘: 제사상에 올리는 동그란 알록달록한 사탕)
낯선 미진 씨
"미진 씨 몸은 좀 어때?"
"몸이 왜? 나 지금 너무 좋은데?"
무단결근, 그리고 옥춘을 먹으며 싱긋 웃는 눈앞에 낯선 모습까지 저는 미진 씨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요즘 일이 너무 안 풀려서 고민인데 나랑 같이 점집 가볼래?"
"뭐? 내가 거길 왜 가?"
갑자기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미진 씨를 보니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미진 씨 안에 정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았거든요.
어떻게든 미진 씨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었던 저는 퇴마로 유명한 스님을 한 분 떠올렸습니다.
원이 씨의 회유
"이럴 게 아니라, 우리 바람 좀 쐬러 갈까? 왜 선암사 쪽에 병원 사람들이랑 몇 번 야유회 갔었잖아. 진짜 그냥 바람 쐬러 가는 거야. 오랜만에 힐링하고 싶어서"
저는 온갖 핑계를 대며 미진 씨를 설득했고 그렇게 저희 두 사람은 함께 절로 향했죠. 그런데 산을 오를 때는 분명히 말이 많았던 미진 씨가 절에 도착하자마자 불안한 듯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리는 거예요. 역시 뭔가 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장 그녀를 스님 앞으로 데려갔어요.
"이번에 이 친구가 좀 아팠어요. 결근도 하고"
"아니에요. 저 지금은 괜찮아요. 아무 일 없어요."
괜찮다며 갑자기 도망가려는 미진 씨를 스님이 꽉 붙잡자, 미진 씨는 놓으라며 발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굴하지 않고 미진 씨의 팔을 더욱 꽉 붙잡고는 그녀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기억하세요! 보살님은 뭔가 기억이 나십니까?"
스님의 질문에 미진씨는 악다구니를 쓰며 몸부림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미진 씨가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괜찮습니다 많이 힘드셨죠? 잘 생각해 보세요"
"기억이... 안 나요..."
스님과 미진 씨 모두 기진맥진해서 온몸이 흠뻑 땀에 젖었을 때쯤 드디어 그녀가 낯설게 변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성묘를... 다녀왔었는데.."
스님의 퇴마록
일주일 전 성묘를 다녀온 미진 씨는 다른 묘지를 찾은 성묘객이 음식을 나눠주길래 그걸 받아먹었다는 겁니다.
부모님이 말릴 정도로 홀린 듯이 음식을 허겁지겁 먹게 되었고 스님은 그 음식 때문에 무덤주인의 혼이 붙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묻자 미진 씨가 갑자기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기절해 버렸습니다.
"퇴마를 서둘러야 하니 잠시 곁을 지켜주세요. 준비되면 데리러 오겠습니다."
스님이 법당 안으로 들어가 퇴마를 준비하는 동안 저는 밖에서 누워있는 미진 씨의 팔을 꼭 붙잡고 자리를 지켰어요. 그때 갑자기 미진 씨가 깨어났고 괜찮냐는 저의 물음에 대답 없이 까만 눈동자를 굴려서 저를 노려보는 거예요.
너무 무서워 두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법당 안쪽에서 목탁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미진 씨를 여기 두고 왜 스님 혼자 퇴마를 시작하셨지?'
뭔가 이상했지만, 도무지 눈을 뜰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도 목탁 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가고 법당 안에서 스님의 호통과 여자의 비명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고막이 퍼질 듯한 소리에 귀가 먹먹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때
"원이 씨 우리 이제 집에 가자"
제가 아는 친절한 미진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제 손엔 미진 씨의 팔이 아닌 웬 목탁 손잡이가 들려 있고 저기 법당 안에서 짧은 단발머리에 미진 씨가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비방책
"미진 씨 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
"걱정 마세요. 영가의 흔적이라 모두 사라졌습니다. "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제가 봤던 긴 머리에 낯선 미진 씨는 죽은 무덤의 주인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미진 씨에게 붙은 귀신의 모습을 봤었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두 분이 꼭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스님은 저와 미진 씨에게 염주를 하나씩 건네주며 각자 오른쪽과 왼쪽 발목에 착용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집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염주를 끊어내고 대문 밖에 버려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전 집에 도착해 잊지 않고 염주를 끊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밤 저는 기묘한 꿈을 꿨습니다.
염주의 효력
꿈에서 미진 씨가 출근했는데 그 귀신의 모습인 거예요. 귀신이 제 이름을 부르며 걸어오는데 왼쪽 발목이 잘려 있었습니다. 순간 소름 돋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 귀신의 발목이 잘린 위치가 제가 조금 전까지 염주를 꼈던 위치와 똑같다는 사실이에요.
'귀신이 다시 찾아올까 봐 스님이 염주를 끊으라고 했던 거야! 근데.. 한쪽 발목은 남아 있었는데?'
잠에서 깬 전 불안한 생각에 곧장 미진 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불안한 신호음이 이어지고 곧 자다 일어난듯한 미진 씨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미진 씨 염주 버렸어?"
"어? 맞다. 피곤해서 깜빡했어!"
"그거 지금 당장 버려! 전화 끊지 말고 지금 당장!"
그제야 미진 씨는 부랴부랴 염주를 끊어버렸고 바로 다음날 병원에 출근한 그녀는 제가 알던 친절한 미진 씨의 모습 그대로였어요. 혹시 여러분 주변에도 갑자기 낯설게 변하거나 연락이 끊긴 사람이 있나요? 만약 그날 제가 병문안을 가지 않았더라면 미진 씨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도 저는 미진 씨와 친구로 지내는 사이지만 가끔 섬뜩했던 낯선 얼굴에 떠오르곤 합니다.
-FIN-
낯선 미진 씨 _그 후의 이야기
보통 염주는 기운이 담겨있어 차고 있으면 효력을 발휘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이사연은 특이하게 끊어냄으로써 효력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연에서 소개하지 못한 하나의 일화가 더 있는데, 원이 씨가 꿈을 한 번 더 꾸셨다고 합니다.
꿈 내용은 머리 긴 귀신이 또 나타나서 이번엔 두 발목이 잘린 채 노려보고 있다가 기어 왔다고 하네요 근데 두 발이 없어서 더 이상 쫓아오지는 못하고 두 팔로 허우적거리는 꿈을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아마 그날 염주를 끊어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심야괴담회 시즌3 94화 낯선 미진 씨는 정아영 씨가 사연을 소개해줬으며 35개의 촛불이 켜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