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에서 살다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복도식 구축 아파트인데 전용 7평짜리 오피스텔에서 2배 정도 넓어진 공간에서 살게 된 거죠.
전에 살던 오피스텔은 풀옵션이라 제 가구가 하나도 없었지만 이번에 이사를 오면서 가전제품들과 가구들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내 가구들을 샀으니 옵션이 있는 원룸은 더 이상 살 수 없겠죠?
고양이와의 이사걱정
저와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는 제가 독립을 하기 전 아파트 뒷산에 살고 있던 산고양이였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 마실을 나온 첫 만남 이후 5년 동안 매일 꼬박 밥을 주게 되었죠 소위 말하는 캣맘이 되었다고 해야 되나요?
영역싸움으로 피투성이가 되고 하고, 지독한 감기에 걸려 며칠째 밥을 못 먹는 등 위험한 상태일 때는 제가 병원에도 데려가면서 5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피스텔로 이사를 오게 되었을 때도 매일 한 번씩은 예전 동네에 가서 밥을 주곤 했었죠.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때쯤 고양이는 역시나 지독한 감기에 걸려 몸이 굉장히 안좋아보였습니다.
그래서 독립도 했고 집으로 데려와 고단한 길생활에 얼어있는 몸을 녹여주니 점차 회복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또 7년을 같이 보냈습니다.
길양이+산고양이 출신이라 그런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엄마고양이한테 사람을 경계하라고 배운 건지 곁을 잘 안 주었었고 첫 만남 후 6개월 후에나 손길을 허락했던 아이라 저 말고는 사람을 워낙 무서워합니다. 겁도 많고 예민한 제 고양이는 집에 사람을 초대하는 것도, 병원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사라는 큰 벽을 만나게 된 거죠.
7년이나 보낸 공간은 이미 업어가도 모를듯한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 되어버려 배를 뒤집어 깐 채 편하게 누워있는 고양이를 보니 마음이 안 좋긴 했습니다.
고양이호텔 VS 친구집 VS 혼자케어
이사는 어쩔 수 없이 소음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낯선 사람들이 자신의 구역에 들어와 왔다 갔다 한다는 것만으로 고양이에겐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게다가 영역동물이라 다른 환경에 맡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나의 고양이는 병원에만 가도 난리가 나는 아이라 낯선 환경에 맡기는 것 자체로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고양이 호텔에 맡기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저외에 다른 사람을 무서워하니 친구집도 마찬가지였죠 이럴 때 같이 키우는 가족이 있었으면 차에서 같이 대기할 수도 있지만 일인가구는 이것저것 제약이 많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집안의 독립된 공간인 화장실에 두었다가 이동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고양이 안정제 처방
동물병원 주치의한테 연락을 하니 안정제를 처방해 주었습니다.
고양이 안정제는 고양이에게서 두려움만 없애주는 역할이라 안전한 약입니다.
처음에 동물병원에 그냥 데려갔다가 그 기운 센 힘으로 난리를 쳤던 기억에 병원 갈 때도 꼬박 안정제 한알씩 먹이고 가곤 했었는데 확실히 얌전하게 진료를 잘 받곤 했었죠
사람도 마음이 너무 불안하면 우황청심원을 마시든 고양이게도 그런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혹시나 고양이에게 안 좋지 않을까? 란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특히나 예민한 고양이라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게 훨씬 도움이 됩니다.
안정제는 이사하기 2시간 전에 복용을 시켜야 합니다. 2시간 후부터 약의 효가가 나오며 길게는 12시간 정도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고양이 상태를 봐가면서 아침과 저녁에 한알씩 복용해 주면 됩니다.
캔넬 VS 이동장
편하게 지내다 보니 살도 점점 쪄서 9.5KG이 되어버린 뚱냥이를 위해 행복캔넬을 구입했습니다.
8KG 이상 무게를 견디는 켄넬중 제일 작은 사이즈가 행복캔넬 350이었는데 막상 도착을 해보니 너무 컸습니다. 켄넬 무게도 있는데 고양이까지 들어가니 들고 이동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이사 가기 10일 전쯤 켄넬을 집안에 두고 들락날락하기를 바랐지만 이 녀석 절대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유인을 해봐도 잠깐 들어갔다 튀어나오길 일쑤였죠.
원래 이사 가기 한 달 전부터 이동시킨 캔넬에 적응시키면 이동할 때 수월하다고 하는데 저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이삿날 들어가기 싫어하는 켄넬에 억지로 넣을 수밖에 없었죠 이삿짐을 나를 때 시끄러운 소음과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것이 좋다고 들어서 화장실에 옮겨놓았더니 난리가 났습니다. 안정제를 먹였는데도 켄넬 안에 실수를 할 정도로 안절부절못하더라고요. 원래 반포장 이사를 신청해 놔서 같이 짐도 싸고 해야 되는데 저 혼자서 고양이를 케어해야 하니 화장실에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도 켄넬에서 나가겠다고 난리를 쳐서 켄넬 안에서 꺼내자 그제야 좀 안정이 되는지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서 그냥 누워 있더라고요. 갇혀 있는 건 정말 싫었던 모양입니다. 건식화장실이라 고양이와 둘이 그렇게 1시간 반정도를 앉아 있었습니다. 다행히 혼자서 짐을 다 싸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이동할 땐 원래 쓰던 이동장 가방으로 이동했습니다. (켄넬은 대기할 때 넣어두는 용도로만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고난의 이사
저는 차가 있어서 이삿짐보다 새집으로 고양이와 함께 먼저이동을 했습니다. 차에서도 역시나 개구호흡하면서 끊임없이 울더라고요.. 아 안정제를 먹여도 이 정도라니...
도착 후 작은 방안에 켄넬 안에 넣어놨더니 역시나 난리를 치길래 켄넬에서 꺼내놓으니 그제야 좀 나아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같이 작은 방안에 있다 이삿짐이 도착하길래 작은방에서 나갔다 들어갔다는 반복 했습니다. 진짜 평소에는 몰랐는데 이사할 때는 다른 가족이 정말 절실하더라고요..
큰 짐은 침대 하나뿐이라 침대만 바로 조립해 주고 반포장이라 거실에다 짐만 잔뜩 쌓아놓고 이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나의 고양이를 일단 침대 속으로 넣어놓고 슬슬 이삿짐 정리를 시작하였죠 가구들은 아직 하나도 안산 상태라 대충 보관함에다 정리해 놓고 작은방에 이삿짐을 몰아버렸습니다.
그렇게 대충 그날의 이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일단은 고양이와 함께 무사히 이사를 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펠리웨어 훈증기를 켜놓아서 고양이 심신안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했지만.. 공포에 떠는 고양이에겐 무용지물이더라고요 안정제를 먹어도 무서워하는 상태라 일단은 이불속에서만 숨어있는 고양이를 나 두었다가 저녁에 안정제 하나를 더 먹였습니다.
안정제를 먹이면 잠깐 이불속에서 나오긴 하는데 낯선 환경이 무서운지 금세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 어쩌다 나와도 베란다에서 보이는 바깥풍경만 봐도 또 무서운지 이불속으로 직행...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전에 집 다시 갈 순 없을까?
고양이는 제 생각과는 항상 다르게 움직입니다.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무서워할 때도 많았고 기분 좋아할 거라 생각한 내 상상과는 다르게 꼬리를 숨기고 어두운 곳으로 숨어버리는 등 항상 제 생각과는 반대로 갈 때가 많았죠
이사도 역시 작은 오피스텔에서 조금 더 넓어진 공간으로 가면 좋아하지 않을까? 커다란 베란다의 창에서 내다려 보면 좋아하지 않을까? 역시나 저 혼자만의 망상이었습니다.
현관문에 가서 나가고 싶다고 울고 있거나, 개구호흡을 하거나, 이불속에서도 머리가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워하는 고양이를 보고 있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전세 살던 그 오피스텔을 샀어야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영역동물인 고양이에게 이사란 사람으로 치면 낯설고 먼 나라에 이민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낯선 환경 구조 그리고 냄새가지 이역만리 타지에 있는 것과 동일한 느낌이겠죠
심지어 구축아파트라 그런지 이사다음날에 이웃집 리모델링 공사소리로 집이 울리기까지 하더라고요. 하루종일 드릴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불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고양이에게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괜히 이사 왔다. 그런 후회... 편안하게 드러누워있던 전에 모습을 생각하니... 정말 아찔했습니다.
이 집을 고를 때 전 세입자에게 정말 조용한 집을 찾고 있다고 말하고 층간소음 등등을 물어보고 구한집이라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구축아파트가 오히려 튼튼하게 지어서 소음이 없다고 그랬는데 말이죠..
그런데.. 첫날 저녁부터 층간소음 벽간소음 말소리 물 쓰는 소리까지 다들리는 집은 여기가 처음이었습니다. 전세입자말로는 이렇게 조용한 집은 처음이라고 했는데 전세입자가 방을 빨리 빼려고 저한테 사기를 친건지.. 이런저런 상황이 모두 엄청난 스트레스도 다가왔습니다.
고양이 적응은 시간이 약이다
고양이는 소음에 정말 스트레스를 받는 동물인데 이사도 힘든데 시끄러운 집으로 데려오게 돼서 너무나 미안하더라고요 괜찮은 집을 다시 찾는 것도 새로운 집에 또다시 이사를 강행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라 많이 혼란스러웠고 일단은 적응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안정제는 일주일간 하루에 두 번씩 계속 먹였고 그 이후에는 조금은 나아 보여서 하루에 한 번으로 줄였습니다.
내 고양이는 20일간을 거의 이불속에서만 있다가 밤에 조금씩 나와서 탐색 좀 하고 하더니 점점 이불밖에서 있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밥은 꼬박꼬박 잘 먹더라고요 물론 먹고 바로 이불속으로 가긴 했지만..
지금은 이사 후 한 달 하고도 10일 정도가 지난 시점이지만 아직도 적응 중입니다. 그래도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보단 정말 많이 달라졌죠
지금은 거실에서 배를 까고 누워있을 때도 있지만 위집의 발망치 소리가 날 때마다 여전히 놀래고 여전히 베란다 창문을 무서워합니다. 그래도 정말 시간이 약인 듯 조금씩 고양이가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저와 같이 예민한 고양이와 같이 사시는 집사라면 고양이는 언젠가 적응을 하니 저처럼 너무 속 끓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걸리고 정말 느리지만 적응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나의 예민한 고양이
고양이와이 이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고 나면 이삿날에 바로 적응한 고양이들 이야기도 많이 있더라고요 우리 집고양이처럼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던 사연도 있기도 했지만 결국은 시간이 약인 것 같습니다.
고양이스스로 적응을 해야 되지 집사가 억지로 적응하기를 바라는 건 소용없더라고요
12살인 고양이라 적응이 더 느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변화를 싫어하게 되기 마련이니 동물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고양이는 10살이 넘어가면 예전 어렸을 때 했던 행동들을 못하게 되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등도 조금씩 굽어가고요.. 사람처럼 노묘가 되어 가는 과정인 거죠 그래서 이때가 되면 활동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 이사하게 되면 좀 오래 살 집을 구하려고 했는데 막상 이사 와서 보니 마음에 드는 환경이 아니어서 고민이 됩니다. 네이버 부동산을 찾아봐도 마음에 드는 집은 안보이더라고요 드라마에 나오는 안락한 집들은 다 미술감독이 만들어 낸 건지.. ㅎㅎ
계약기간이 끝나서 이사를 가든.. 그전에 이사를 가든 나의 고양이의 노후를 책임질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이사가 고양이와 함께 하는 마지막 이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