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괴담회 시즌3 91회 첫 번째 이야기 아무도 없었다입니다.
제목만 보면 애거사 크리스티의 아무도 없었다가 생각이 나는데요 이 이야기는 16년 전에 군대를 전역하신 정진수(가명)씨가 비슷한 시기에 전역한 친구 두 명인 수현 씨와 지훈 씨와 함께 시골 할머니 댁으로 놀러 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 댁을 코앞에 두고 정말 믿기 힘든 일을 겪었다고 하는데요 진수 씨의 시점으로 사연은 시작됩니다. (사연에 나온 지명들은 다 가명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외갓집을 향해
저희 할머니께선 경상북도의 한 시골 마을에 살고 계셨습니다. 평소엔 아버지 차를 타고 가서 몰랐는데 할머니 댁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 외진 곳이 있더라구요.
"동하리 가려는데 버스를 어디서 타면 될까요?"
"동하리? 아유 이거 거기 버스가 지금 떠났는데 한 세 시간은 기다려야 돼 거기 버스가 하루에 네 번밖에는 안 다니거든."
그럼 버스 말고 다른 방법은 없냐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요. 앞에 산이 하나 있는데, 산을 쭉 가로질러서 한두 시간쯤 걸어가면은 할머니 댁이 있는 동하리가 나온다는 거예요. 얘기를 들은 저희 셋은 망설임 없이 산길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분위기 묘한데? 야 진짜 공기가 좋다"
저희가 걷던 길은 길고 곱게 뻗은 대숲길이었습니다. 바람 한번 불면 여기저기서 그냥 쏴 하는 이런 묘한 소리가 들려오고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도 더위는커녕 서늘하니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어요.
저와 친구들은 넋을 잃고 대숲의 풍경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디가?"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전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이상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그런데 그때 다시 반대쪽 귓가에서
"여기야"
저는 깜짝 놀라 이곳저곳 둘러봤지만 이번에도 주변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야? 방금 어떤 소리 못 들었어?"
친구들 아무 소리 듣지 못했다고 했지만 전 기분이 이상해서 숲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는데 저기 대숲 사이로 작은 체구의 할아버지께서 다가오셨어요.
그런 할아버지의 한쪽 손에는 죽은 닭 서너 마리가 쥐여 있었고 할아버지께서 정말 역한 냄새가 진동을 하더라고요. 이게 닭 피 비린내도 아니었고 씻지 않아서 나는 그런 채취도 아니었어요. 생전 처음 맡아보는 굉장히 불쾌한 냄새였습니다.
무례한 할아버지
"왜 여기서 얼쩡대고 있어?"
"그냥 저희 동하리 가는 길인데요?"
" 동하리는 이리로는 못 가니까 돌아들가!"
이쪽으로 그냥 쭉 가면 동하리가 분명 나올 텐데 화를 내려 돌아가라는 기분 나쁜 어르신이었습니다. 절 뚫아져라 쳐다보시는데 노려보는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섬뜩하고 제가 눌리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쪽으로 가면 무명리가 나와! 무명리는 절대 가면 안 돼!"
무명리.. 무명리는 어릴 적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 대신에 할머니 댁에서 한 4년 정도 살았을 때 할머니를 따라서 몇 번 놀러 간 적도 있는 그런 마을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만류하시긴 했지만, 저도 어릴 적 가봤던 마을이기도 하고, 또 굳이 못 갈 이유가 있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우리들은 좋게 좋게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하고 그냥 가던 길 그대로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런 우리의 뒷모습을 할아버지는 거의 잡아먹을 듯이 끝까지 노려보았죠
그렇게 깊숙이 더 깊숙이 대숲 안에 들어서다 보니 저 멀리 안개사이로 어스름히 한 마을이 보이시기 시작했어요.
무명리마을의 스산한 대숲
"여긴가 본데? 무명리라는 데가?"
마을 어귀부터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한 무명리는 정말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제 기억과는 달리 마을회관도 집들도 모두 무너진 채였고 집들 사이사이로 대나무들만 그냥 무성하게 자라 있었어요. 거기다가 대나무 숲에 스산한 소리와 그늘까지 더해지니까 낮에 가도 소름이 돋는 그런 곳이더라고요.
얼른 지나가자 싶어서 친구들과 저는 빠른 걸음으로 빈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다시 커다란 대숲이 펼쳐졌고 저희 셋은 빠르게 대숲을 걷고 있었는데..
친구들의 실종
대숲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하고 기분 나쁜 소리가 생겨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동물소리도 아니고 외계인소리도 아닌 영화에서나 들릴법한 그런 이상한 소리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말 기괴한 소리였어요
저는 너무 놀라서 뒤를 확 돌아봤는데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야 니들 어딨어? 야 장난치지 말고 "
정말 큰소리로 외쳤지만 친구들의 대답은 일절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대숲을 달리면서 친구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달리고 또 달리면서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기만을 바랬죠 그런데 다시 기괴한 소리가 제 귓가에 꽂히듯 들리더니, 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몸이 굳어가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눈을 뜬 채로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일 수 있는 곳이라고는 겨우 그냥 눈동자뿐이었어요.
대나무 숲에서 생긴 일
그런데 그때 저 멀리 대숲사이로 한 여자의 얼굴이 빼꼼히 보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아 전 여자를 찾기 위에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바로 제 얼굴 앞에 처음 보는 여성의 웃는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심장이 머질 것 같은 그런 공포에 눈을 찔끔 감았어요. 그랬더니 제 다리를 손으로 확 잡아채는듯한 느낌에 중심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서늘하고 묵직한 감촉이 제 몸 위로 올라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럴수록 힘이 쭉 빠지고 정신이 흐리흐릿해져 가는 걸 느끼는 순간
"진수야 진수 거기 있니? 할미가 왔어 진수야!"
어렴풋이 들린 할머니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전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저와 제 친구들은 할머니 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곁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라 부모님이셨습니다.
이미 죽은 아이들
언제 오셨냐 한번 물어봤더니, 너희 지금 거의 닷새 만에 일어난 거라며 몸은 괜찮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희는 정말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아서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된 그런 사실인데 저희가 발견되었을 때는 각자 다 떨어진 채 대숲 여기저기에 누워 있었더랍니다. 집으로 데려왔지만 사흘 내내 먹은 것도 없었는데 계속 구토를 하여 앓아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할머니께서는 인근에 살고 있던 무속인을 부르셨다고 하는데,
"어르신! 애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야! 무명리에서 왜 데리고 오셨어?"
이들은 이미 대나무밭에서 죽은 애들인데 왜 데리고 왔느냐며 혀를 끌끌 찼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자신이 모은 전재산을 다 모아서 줄 테니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했지만 무속인은 이건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며, 지금 얘네들한테 든 귀신을 자기가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히 알 수도 없다고 했답니다.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들도 모우 무릎까지 빌고 또 빌고 하니 무당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할머니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습니다.
"어르신이 다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
할머니께서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위험한 굿을 진행되었습니다. 무속인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굿을 시작했고, 할머니는 밖에서 방문을 꼭 붙잡고 있었습니다. 방안에서는 숯불에 쑥과 마른 고추를 가져와서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위험한 굿의 시작
매캐한 연기가 방 안 가득 들어서자 죽은 듯이 누워있던 저희 셋이 갑자기 악을 지르고 난동을 부리면서 밖으로 나가겠다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안간힘을 쓰며 방문을 잡고 버티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한참 동안 실랑이가 벌어졌고 굿이 끝나자 아이들도 할머니들도 동시에 쓰러졌습니다. 무속인은 향로 안에 타고 있는 재를 맨손으로 집어와 아이들과 할머니의 몸 구석구석 재를 다 발라주시면서 굿은 잘 끝났고 아이들과 할머님은 곧 정신을 차리실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저희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우리에게 굿을 해주셨던 무속인이 저희가 똑같이 당했던 대나무밭에서 복부에 대나무가 꽂힌 채로 돌아가셨다는 말이었습니다.
운명을 알고 있던 무속인
굿이 끝나고 가실 때 부모님이 500만 원 정도를 주니까 무속인은 인제 자신은 돈이 필요 없다며 내가 죽을 사람인데 뭐 이 돈 지금 가져가서 뭐 하겠냐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노잣돈이 이 정도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어"
하시며 만 원짜리 한 장만 가져가셨다고 하네요
거액의 굿 값이 아닌 노잣돈 만 원만 가져간 그날 저희 대신에 자신이 목숨을 잃을 거라는 걸 예견했던 걸까요?
저희의 목숨을 살려준 그분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FIN-
아무도 없었다 그 후의 이야기
그 무명리라는 마을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나중에 부모님 통해서 이야기를 들으셨는데 무명리라는 마을이 실제로 인근에 사시는 동네 알만한 분들은 낮에도 안 지나가는 폐마을이라고 합니다.
분위기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위험한 곳이라고 하네요
대나무가 귀신 부르는 나무다라는 말도 있는데 사실 의외로 대나무 자체는 오히려 귀신을 쫓는 데 많이 쓴다고 합니다. 대안쪽 속이 비어있어서 불에 타면 안에 공기가 팽창해 가지고 탁탁하는 요란한 소리가 나는데 귀신들이 이 소리를 듣고 싫어해서 도망간다고 하네요.
사연자는 이후 그 무명리 근처에 딱 한번 간 적이 있는데, 무속인 분이 그렇게 돌아가신 게 너무 죄송해서 차마 숲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나마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심야괴담회 시즌3 91회 첫 번째 이야기 아무도 없었다는 39불의 촛불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