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출연한 이나영배우가 선택한 박하경 여행기는 웨이브에서 볼 수 있으며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에피는 25분의 분량으로 만들어져 있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짧은 호흡으로 부담 없이 볼 수 있으며, 흡사 고독한 미식가 같은 일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드는 구성입니다.
저 역시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녀보았고, 극 중 박하경 님의 나이와 비슷한 또래여서 박하경여행기라는 드라마를 더욱 관심 있게 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여행기를 보여 느낀점은 혼자서 여행을 다닐 때 겪을 수 있는 실제상황들이나 겪을 수 있는 판타지에 대해서도 잘 풀어놓았다는 생각입니다.
여행이란 건 사실 특별하지 않습니다. 낯선 동네에 가서 구경하고 감탄하고 멍 때리고 먹고 돌아다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 맥주 한잔 하는 그런 여정
혼자 떠나지만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혹시 모를 나와 같은 여행자를 만나는 로맨스르 상상해보기도 하는 여행이라는 이미지 요소들을 잘 섞어 놓았습니다.
6개의 에피를 본 상태지만 실제 제가 경험했던 이야기와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ep.1 템플스테이
박하경은 해남까지 당일치기 템플스테이를 떠납니다. 같이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한 수행자를 만나 같이 자연을 동행하면서 내면의 평안을 찾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용입니다.
물론 드라마라는 요소에는 출연자들과의 융합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경이에게 끊임없는 대화를 요구하지만 실제 내가 템플테이를 했을 때는 아무도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휴식형을 택해서 더 그러했을지 모르지만 '절에 가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을 정도로 아무도 신경조차 쓰지 않습니다. 마치 절에 있는 돌무더기가 된 느낌이죠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인생이 꼬인다고 생각이 들 때 템플스테이 신청해서 조용한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p3 부산여행
혼자 밀면을 먹고 서점을 구경하고 영화를 보는 전형적인 부산 여행을 하는 건 굉장히 흡사합니다.
하지만 박하경이 차를 마시며 사랑이란 단어에 대해 생각하며 멍 때리는 공간이나, 낯선 다른 여행자(구교환)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이어지는 건 역시나 판타지입니다.
열린 창문으로 뻥 뚫린 바다를 내려보며 차를 마시고 잔잔한 음악을 듣는 하경 하지만 실제로 그런 뷰를 가진 카페라면, 이미 사진을 찍는 인파들로 북적거리며 수다 떠는소리들로 인해 혼자서 조용히 경치를 즐기며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한옥에 앉아 열린 창문으로 폭포를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청운문학도서관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곳은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진만을 찍으려고 줄을 서 있는 인파들을 보았을 때 굉장히 허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그 공간은 다른 누군가에게 과시하기나 자랑하기 위해 사진만을 남기는 공간으로 변모해 정말 책을 잃고 싶은 사람은 이용할 수 없는 그런 공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여행지에서 자신과 닮은 남자를 만나는 것 또한 있을 수는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적이 한번 있었지만 집에 와보니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에 대해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 연락을 끊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은 하경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대하지만 어긋난 버린 인연은 한순간의 추억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맞을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ep4. 나와 다른 세대와의 만남
하경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할아버지와 말다툼을 하게 됩니다.
젊은 사람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이 본인의 입장에서 보는 젊은 세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 하경이는 욱하는 마음에 조목조목 반박을 하게 되어 서로 상처를 입지만 본인의 아버지와 같은 세대를 살아오신 할아버지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후회를 하게 됩니다.
자신의 손자의 재롱을 보고 좋아하고 초라한 뒷모습으로 걸어가는 여느 평범한 할아버지를 지켜보며 하경이는 달려가서 사과를 하게 되죠
할아버지 역시 욱하는 마음에 거친 소리를 내뱉었지만 사과하는 하경을 보며 겉으로는 투박하게 굴지만 속정 있는 여느 할아버지들과 마찬가지인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손주에게 줄 약과를 하경에게 전해주며 이별을 하게 되고 하경이는 집에 와서 맥주 한잔과 약과를 먹습니다.
같은 방향으로 가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사람들 대하는 서툰 방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죠 하지만 상대방은 그저 누군가의 부모님 그리고 누군가의 자식일 뿐입니다. 나와 같은 자녀 그리고 우리 부모님 같이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이 너무 험하서 낯선 사람들에 대해서 저도 먼저 경계를 하는 게 먼저가 되어 버렸는데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저도 많이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 말다툼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피하는 게 좋습니다.
ep.5 우연한 작가와의 만남 그리고 춤추기
여행지에서 맛집에 혼자 가는 것은 솔직히 힘든 일입니다.
일단 우리나라는 기본이 2인분인 집이 많기 때문에 가게직원이 혼자 오면 싫어하거나, 아예 1인은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줄 서서 먹는데라면 저는 과감하게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극 중 하경이처럼 줄 서서 한참 기다렸는데 막상 주문하려고 하니 1인분은 안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으면 말이죠.
혼자 먹는 것에 대해서 저는 전혀 불편하지 않지만 오히려 식당의 대처에 무례함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동경해 왔던 작가를 우연히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작업실에 초대된 차를 마시고 절판된 책까지 선물 받는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춤을 춰본 적이 없다는 하경은 낯선 곳에서 합류해서 제대로 춤을 춰보기도 하는데 낯선 여행지에서는 그런 용기가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자신의 낯선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p6. 경복궁 나들이
비가 억수로 오는 토요일 하경은 경복궁을 찾습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노란색 우산을 쓰고 검정 장화를 신고 고즈넉한 궁궐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보기만 해도 이쁜 그림이죠 하지만.. 경복궁은 평일에도 외국인들의 인파가 많으며 주말인 경우 인파로 인해 미어터지는 관광지이기도 합니다.
하경이의 조용한 궁궐나들이 자체가 판타지물일 뿐입니다.
저도 저렇게 조용한 서울을 느끼며 돌아다녀봤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은 연차를 내고 서울여행을 해봤던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직장에서 일하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방방곡곡에는 이미 많은 자유인파들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에 좀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의 생활이 인구 비례에 비하면 많긴 하지만 그것이 평범한 생활이라고 여겼던 제 가치관이 깨지기도 했었던 날입니다.
남은 2가지 에피도 마저 봐야겠습니다.
공감 가는 부분도 있고 이질적인 부분도 존재하지만 박하경 여행기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차분해지고 여행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경은 실제와 흡사하기 때문에 아름다웠던 장소들에 대한 그리움도 상기시켜 주기도 합니다. 또한 제가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더 공감이 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극 중 박하경은 비 오는 토요일 집을 나서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가지 않은 길로 가보자 이것도 일종의 모험이다"
여행은 멀리 떠나지 않아도 평소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여건이 안 돼서 멀리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저와 누군가의 여행기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