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괴담회 시즌3 92회 첫 번째 이야기는 초라한 장례식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서울에 사시는 최민영(가명)씨가 보내주신 사연인데요. 민영 씨에겐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가족의 끔찍한 비밀이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민영 씨의 시점으로 이어집니다.
큰아버지의 부고
2010년 여름, 퇴근 후 집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던 저는 엄마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어요.
"민영아 큰아버지 돌아가셨대"
큰아버지란말..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예전에 연락이 끊겨서 어디서 뭐 하고 지내시는지 전혀 몰랐거든요.
"장례는 거제도에서 치른다니까 얼른 준비해서 나와"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게 무려 10년 전인데 아무런 연고도 없는 거제도에서 외롭게 돌아가실 줄이야.. 저는 서둘러 기차를 타고 버스에 택시까지 갈아탄 뒤에야 겨우겨우 큰아버지의 장례식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고 초라한 장례식은 살면서 정말 처음 본 것 같았습니다.
입구부터 조문객 한 명 보이질 않는 텅 빈 빈소에는 가까운 친척들 몇 명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사실 저희 큰아버지는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큰아버지의 비밀
큰아버지는 당시 건설 현장에서 안전관리 업무를 맡고 계셨는데 공사 중 붕괴 사고가 일어나서 사람이 여러 명 죽고 다치는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그에 책임을 지고 징역형을 살다 나오셨는데 출소한 후에도 기자들과 희생자 가족들이 자꾸 찾아오는 바람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을 피해서 큰아버지는 10년 가까이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었고, 결국 이렇게 연고도 없는 객지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으신 겁니다.
비밀의 장례식
빈소에 들어가려고 하자 먼저 도착해 있던 작은아버지께서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민영이 왔구나? 잘됐다 네가 여기 문 앞 좀 지키고 있어라"
그리곤 조문객이 찾아오면 무조건 다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복 입은 사람 외에는 절대로 안에 들이면 안 된다."
행여나 10년 전 사고의 희생자 가족이나 기자들이 찾아올까 봐 걱정하신 건데 처음엔 과한 걱정 같았지만 저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불청객이 들이닥치진 않을까?
눈을 부릅뜨고 지킨 지 하루 이틀, 어느덧 발인만을 앞둔 빈소의 마지막 밤이 되었습니다.
텅 빈 방명록을 보며 어릴 적 큰아버지의 자상했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어요. 평소에 화 한 번 안 내시던 분이었는데. 정말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을까? 혼자 넋두리하며 복잡한 마음을 달래던 그때 한 할머니가 씩씩대며 장례식장을 찾아오셨어요.
조문객들의 방문
"최용수 그 사람이 죽었다고? 누구 마음대로!"
큰아버지 성함을 목청이 터져라 부르는데 혹시나 희생자 가족인가 싶어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할머니의 힘이 어찌나 세신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계셨거든요. 알고 보니 근처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시는 할머니였는데 강도가 들었을 때 큰아버지한테 도움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너무 고마운 사람인데 이렇게 황망하게 가나! 아이고!"
그 이후로 고향 친구분도 몇 분 오시고 큰아버지를 애도하는 발길이 드문드문 이어졌습니다.
'생각보다 가시는 길이 외롭진 않겠구나... 그래 이런 걸 보면 정말 그렇게 나쁜 분은 아니셨던 걸 거야..'
나름 뿌듯해하던 그때 또 한 무리의 조문객이 나타났습니다.
인부들의 방문
마치 방금까지 공사장에서 일하다 온 것처럼 흙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의 작업복 차림의 남자 5분이었어요. 흰 봉투를 꺼내 구깃구깃한 초록색 지폐들을 담고는 빈소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상복 안 입고 온 사람은 절대 아무도 들이면 안 된다!"
순간 작은아버지의 당부가 떠올랐습니다.
"정말 죄송한데 장례는 가족끼리 조용히 치르기로 했습니다. "
정중하게 말하면서 앞을 막아서자 그분들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전에 정말 큰 빚을 져서 그래요. 이렇게 그냥 보내드릴 수가 없어요."
뒤늦게 소식을 들어서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했다고 정말 잠깐이면 되니까. 큰아버지를 꼭 뵙게 해달라고 사정사정하시는데 행색이 초라해서 입장을 거부당했다고 오해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 아까 할머니 일도 있고 설마 나쁜 뜻을 가진 사람이 조의금까지 준비했겠어?'
저는 잠시 고민하다 남자분들을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텅 빈 빈소가 조금이나마 채워지길 기대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얼마 뒤에 어디선가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어요.
큰어머니의 꿈
"안돼 내 남편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달려가 보니 오열하고 계신 큰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안정을 되찾으신 큰어머니는 힘겹게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들려주셨습니다. 몇 분 전 살짝 잠이 들어 꿈을 꿨는데 큰아버지의 관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대요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단체로 관을 에워싸더니, 관뚜껑을 마구 뜯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조금씩 관뚜껑이 열리고 결국 큰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나자 그들은 관에서 큰아버지 시신을 꺼내 두 다리 두 팔, 그리고 머리를 하나씩 붙잡고는 사방으로 잡아당기면서 큰아버지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죄인을 처형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어요 그런데도 분이 안 풀린다는 듯 사라지는 순간까지 큰어머니를 노려봤다고 합니다.
설마 내가 조금 전에 들여보낸 사람들인가 싶어 놀라 다급하게 주변을 살펴보는데 그 남자들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어요. 친척들에게 물어보니 새로운 조문객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찜찜해서 견딜 수가 없어 엄마에게 물어봤습니다.
"엄마 혹시 큰엄마가 꿈속에서 봤다던 사람들 누군지 알아?"
잠시 망설이던 엄만 10년 전 제가 몰랐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공사현장의 비극적인 사고의 진실
"건물이 무너졌을 때 죽은 작업자가 5명이었을 거야.."
사고당일 큰아버지는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도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1층에서 작업하던 인부 5명이 철근에 깔려 모두 사망하고 만 것이죠. 하지만 큰아버지는
"그 정도는 다들 눈 감고 넘어갔는 일인데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끝까지 억울해하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큰어머니가 힘들어서 헛것을 본 거 같다며 저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지만 발인을 기다리던 새벽 얼마 안 되는 조의금을 정산하고 있을 때 정말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큰아버지의 조의금
조의금을 분류하시던 큰어머니가 사색이 돼서는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거.. 우리 그이 글씨체인데?" 갑자기 덜덜 손을 떨면서 봉투 5장을 보여주시는데 흙먼지가 잔뜩 묻은 봉투 뒷면에 정말로 똑같은 글씨체로 누군가의 이름들이 각각 적혀 있었습니다.
그걸 보며 큰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10년 전에 죽은 사람들 이름이 왜 여기 있는 거지?"
경악을 하며 봉투 안을 확인하신 순간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5개의 봉투 안에 각각 만 원짜리 6장이 들어있었는데, 그게 전부 이제는 구할 수도 없는 10년 전에나 사용하던 국권 지폐였거든요.
알고 보니 10년 전 죽은 작업자들의 일당이 바로 6만 원이었으며, 큰아버지가 죽은 인부들의 일당을 무단으로 조의금으로 사용했던 것이었죠.
인부들은 큰아버지가 줬던 일당 봉투를 고스란히 조의금으로 두고 갔던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원통했으면 작업자들은 자기 목숨 값인 6만 원을 가지고 큰아버지의 장례식까지 찾아왔던 걸까요? 어쩌면 제 생각과 달리 저희 큰아버지는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정말 나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큰어머니도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나셨기에 어디에도 말 못 한 그날의 사정을 이렇게 말해봅니다.
-FIN-
초라한 장례식 그 후의 이야기
실제 이름이 적힌 봉투가 있었다는 정말 놀라웠고, 자신들의 일당을 무단으로 조의금으로 넣었던 큰아버지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간 이유가 '이런 돈 필요 없고 돈보다 소중한 게 사람 목숨이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 건설 현장은 굉장히 위험한 장소인데 공사 기간을 또 맞춰야지만 공사비도 좀 덜 들고 뭐 이러다 보니까, 안전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빨리빨리'란 잘못된 관행이 예전부터 내려왔었다고 합니다. 이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긴 한데 어쨌든 그런 관행대로 했을 뿐이기 때문에 자신은 잘못이 없고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본인이 안전관리감독인데도 말이죠 인부들을 사람으로 안 보고 일꾼으로만 취급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처벌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큰아버지는 업무상 과실 치사죄로 적용이 되어 징역을 살긴 했지만, 2년도 채 안 살고 출소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죽었는데 죗값이 너무 가볍다고 사람들이 굉장히 원통해하셨다고 합니다. 보통 원한이 아닌 것이라 생각되는 것은 꿈에서도 진짜 대역죄인들한테 쓰는 '거열'이라고 불리는 형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목과 사지를 밧줄에 묶은 다음 소나 말의 힘으로 각각 반대 방향으로 담겨서 찢어 죽이는 방법인데 이게 꿈에 나왔다고 하니 그만큼 이제 원한이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요?
심야괴담회 시즌3 92회 첫 번째 이야기 초라한 장례식은 20개의 촛불이 초라하게 켜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