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괴담회 시즌3 92회 세 번째 이야기는 불속의 여자입니다.
이번 사연은 조카분께서 소방대원인 삼촌의 이야기를 대신해서 제보해 주셨는데 10년 넘게 수많은 화재 현장에 출동하셨지만, 그토록 섬뜩하고 기이한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한밤중 화재출동 현장
때는 2년 전 소방대원인 저는 서둘러 현장으로 출동 중이었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곳은 상가와 가정집이 혼합된 5층짜리 건물. 간신히 도착한 건물은 이 한눈에 봐도 정말 처참한 상태였고, 그 주위로 여러 명의 주민들이 발을 동동거리며 서 있었습니다.
저는 후배 소방관인 동찬이와 함께 산소통과 방화복을 점검하곤 서둘러 건물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은 연기 꽉 차 있었고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700도가 넘는 화기에 창문이 깨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어 오를 정도였죠
"이동찬 무리하지 말고 침착하게 나 따라와 "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초짜인 후배를 제 뒤에 두고 5층으로 향하는데 폭팔음과 함께 커다란 시멘트 파편이 제 바로 눈앞에 쿵 하고 떨어졌습니다. 만약 한 걸음만 먼저 갔다면, 파편에 맞아서 그대로 즉사했을 겁니다. 놀라서 위를 올려다보니 천장이 있어야 할 자리가 훤히 뚫렸고 천장과 벽을 타고 점점 더 건물의 균열과 진동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건물이 곧 무너질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무너지는 건물
"당장 나가! 철수해!"
소리를 지르면서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려는데 아니 이 후배 동찬이 녀석이 우두커니 위층만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야 이동찬 뭐 해? 빨리 나가라고!!"
동찬이는 위층에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말했습니다.
"선배 5층에 무슨 소리 안 들리십니까? 도와달라는 소리 분명히 들었어요.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녀석은 제가 말릴 틈도 없이 불길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화재 속 위기상황
"야 이동찬 동찬아!"
애타게 불렀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빨리 후배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산소통 게이지의 남은 시간이 5분 4분 줄어들수록 저는 점점 초조해졌습니다.
'안 되겠어.. 이러다 진짜 죽어'
소방관이 된 후 늘 죽음을 각오해 왔지만 이번엔 정말 끝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숨 막히는 공포에 더 이상 후배를 기다리지 못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서... 선배"
절 부르는 후배의 목소리에 앞뒤 잴 것 없이 곧장 위층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힘겹게 후배 동찬이를 찾았는데 녀석이 불길 한가운데 멍하니 주저앉아있는 겁니다.
"왜 이래! 또 이동찬 일어나 어서 가자고!"
소리를 질러도 후배는 대답 없이 허공만 계속 바라보며 흐느끼만 할 뿐이었죠. 제발 좀 정신 차리라며 후배의 어깨를 흔든 사이 눈앞에서 천장과 외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저는 억지로 녀석을 둘러메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내달렸습니다.
심각한 후배의 상태
그렇게 겨우 건물 밖으로 겨우 피신하지 마자 곧바로 건물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1분.. 아니 30초만 늦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야 이동찬 너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니 목숨은 몇 개라도 되냐?"
그런데 이번에도 후배는 아무 말 없이 온몸을 파르르 떨기만 했습니다. 불안한지 손톱을 마구 물어뜯으며, 뭔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건물 안에.. 사람이 있었어요."
계속 건물 안에 사람이 있었단 말만 되풀이하는데 아까는 설령 사람이 안에 있었다고 해도 도저히 구조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는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녀석이 어깨를 다독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달린 후배를 괴롭히고 있던 건 죄책감이 아니었습니다. 동찬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5층에서 목격한 일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후배가 겪은 일
건물이 무너지는 굉음 속에서 저는 분명히 들었어요.
"살려주세요!! 제발 좀 구해주세요!!"
"어느 쪽에 계세요? 좀 더 크게 말씀해 보세요!!"
희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건물 잔해들을 피해 걸어가다 보니 5층 구석에 작은 방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당겨도 문이 열리질 않는 거예요. 문을 칭칭 감고 있는 쇠사슬 때문이었죠 다급히 도끼를 들어 문을 향해 내리쳤어요.
문이 열리자마자 괜찮으시냐고 물었지만 검은 연기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였습니다. 서둘러 라이트로 이리저리 안쪽을 비춰보다가 절 부르던 목소리의 주인공과 눈이 마주쳤어요
선배.. 그런데요. 그 여자 모습이 어땠는지 아세요? 애처롭게 울부짖으면서도 입은 찢어져라 웃고 있는 거예요.
도대체 제가 뭘 보고 있는 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라고요 서서히 연기가 걷히고 여자의 모습은 점점 더 선명해졌는데 긴 머리카락과 옷이 불에 잔뜩 그슬려 있고 화상을 입은 시뻘건 피부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살려달라고 계속 비명을 치르면서도 양팔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는 거예요.
저는 후배의 이야기를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화재 조사반과 경찰관에게 여러 번 확인을 해봤는데 다들 건물 안에 사상자는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워낙 위급한 상황이라 아무래도 동찬이 네가 뭘 잘못 본 것 같다고 녀석을 달래줬죠 그런데 이후 후배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져 버렸습니다.
피폐해져 가는 후배
날이 갈수록 동찬이의 파리한 안색에 저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습니다.
"너 요즘 왜 그래 어디 아파?"
"선배 저 이러다 죽을 것 같아요 불속의 그 여자가 자꾸 나타나요?"
분명히 침대에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면 불이 난 5층 건물에 자기가 서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 속에서 봤던 여자가 끔찍한 모습으로 다가와서 자신을 왜 안 구했냐며 후배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악에 바친 저주를 퍼붓는다고 했어요.
그렇게 매일 여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후배한테 아무래도 병원을 가보는 게 좋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내가 미친 것 같냐고 바로 화를 내고는 그 후로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새벽 갑자기 후배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녀석은 잔뜩 겁에 질려 제대로 말을 잊질 못했지만 이내 결심한 듯 차분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배 제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요. "
불 속의 여자가 계속 괴롭히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던 동찬이는 혼자서 그 건물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뭔가 알면서도 쉬쉬하고 재수 없다면서 쫓아내고 그러다가 한 할머니로부터 불 속의 여자에 대한 섬뜩한 진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건물에 살던 사람들의 과거
10년 전 건물 5층에는 건물주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 동네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문제가 많은 부부였는데 바로 남편의 의처증 때문이었죠. 남편은 매일같이 아내를 때리고 감시해 심지어 장을 보러 갈 때도 혹시나 아내가 도망갈까 봐 손목에 수갑을 채운 채 질질 끌고 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밤낚시를 가기 위해 외출을 하면서 구석에 있는 창고 같은 방으로 아내를 강제로 밀어 넣었대요 혹시나 자기가 없는 사이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아내의 몸을 쇠사슬로 칭칭 감은 다음에 천장에 매달아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하필 건물에 불이 났고 점점 번져오는 불길 속에서 아내는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밖에까지 여자의 소리를 들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여자는 불타오르는 그 작은 창고방에서 혼자 외로운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선배 제가 여자 처음 봤을 때 춤추고 있었다고 했잖아요. 근데 그거 춤춘 거 아니었어요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쇠사슬을 풀려고 빙글빙글 돌고 있던 거라고요. "
온몸을 꽁꽁 묶은 쇠사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두 손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쇠사슬을 잡아당기고 또 잡아당겼던 여자. 하지만 쇠사슬은 꿈쩍도 하질 않았고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서 몸이 묶인 반대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렇게 고통의 몸부림을 치며 방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채 여자는 그대로 불에타 죽고 말았습니다.
그 여자의 죽음 이후로 기이하게 건물은 1년에 한 번씩 꼭 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출동하기 몇 년 전부턴 5층에 아예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전히 그곳엔 억울하게 죽은 여자의 한이 남아 있는 걸까요?
-FIN-
불속의 여자 그 후의 이야기
사람이 느끼는 고통 중에 가장 센 것이 바로 불타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여자분이 갇혀 있을 때 공포와 묶여 있을 때의 고통이 정말 너무 뭔가 이렇게 몰입이 되어 무서웠다기보다는 조금 너무 안타까운 연민이 느껴지는 사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진실을 알게 된 소방관 후배는 그 이후 휴직계를 내셨고 지금은 더 이상 소방관 일을 하지 않고 계시다고 합니다. 사연자의 삼촌과도 그 후로 연락이 닿지 않아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라고 합니다. 불타는 건물 속에서도 굉장히 용감하게 혼자 5층을 뛰어갈 정도로 의지가 있는 분이니까 다른 일을 하셔도 잘 지내실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심야괴담회 시즌3 92회 불속의 여자는 15개의 촛불을 받은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