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괴담회 96회 두 번째 이야기는 꽃을 든 남자입니다.
28살 하수영(가명)님이 보내주신 사연인데요. 수영씨는 꽃집을 운영하는 어머님 대신 잠깐 가게 일을 보다가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수영 씨의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꽃집의 수상한 손님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엄마가 하시는 꽃집에 잠깐 들리게 됐어요.
그런데 마침 엄마 친구이신 진희 아줌마가 죽었다는 부고를 듣고 급히 나가시게 되었고 저 혼자 꽃집을 지키게 됐죠
시들어가는 꽃을 골라내고 물통도 갈아놓고 그러고 있는데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 들어왔는지 인기척도 없이 웬 아저씨가 카운터 앞에 서 있었어요. 새까만 상복을 입고 오른쪽 팔에는 상주 완장을 차고 말이죠. 그런데 상을 당한 사람이 입이 찢어지게 활짝 웃고 있더라고요.
"찾으시는 꽃 있으세요?"
제 말에 그 남자는 대뜸 가져온 비닐봉지를 제게 던졌습니다. 봉지 속 안에 든 건 국화 한 송이였어요.
상주의 이상한 요구
"이 꽃 다시 포장되지?"
"아.. 그럼요! 제가 예쁘게 새로 포장해 드릴게요."
"똑같이 투명한 비닐로 해줘 고인한테 헌화할 거라.."
무슨 사정이 있나 생각하며 포장을 풀었죠. 그런데요. 정말 그렇게 지독한 악취는 처음 맡아봤어요. 꽃이 빨리 시들지 말라고 물에 젖은 휴지로 줄기 끝 쪽을 감싸놨는데 거기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 거예요.
자세히 보니 빨간 얼룩이 잔뜩 묻어 있더라고요
'설마 피는 아니겠지?' 순간 멈칫했다가 얼른 휴지를 버리려고 하자 아저씨가 제 팔을 꽉 잡으며 화를 내는 겁니다.
"왜 버려! 그냥 같이 포장하라고!"
놀란 전 손님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 포장을 시작했습니다.
근데 그래놓고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몇 초 만에 다시 또 싱글벙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고 있는 거예요 심지어 계속 웃음이 터지는 걸 감추려는 듯 손 쪽으로 입을 가렸는데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근데 붕대 위로 시뻘건 핏자국이 가로로 길게 배어 있더라고요.
'아까 휴지에 묻는 피 아닐까?'
꺼림칙한 기분에 손이 후들거렸지만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서둘러 포장을 끝냈습니다.
꽃을 받은 아저씨가 무언가를 카운터에 내려놨습니다. 그건 바로 5만 원짜리 지폐였죠
"아니에요. 이거 너무 간단한 작업이라 그냥 무료로 해드릴게요."
싱글벙글 웃던 아저씨가 내 말에 또 얼굴이 싹 굳어지는 거예요.
그러더니, 제 손에다 5만 원을 억지로 쥐어주더니, 제가 돈을 돈통에 넣는 걸 끝까지 보고 나서야 씩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 가게를 떠났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을게 도와줘서 고마워"
꿈속의 죽음
그날 엄마는 진희 아줌마의 장래를 도와야 한다며 밤늦게까지 오지 않았고 저는 꽃집을 마감하고 자취방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뭔가가 하나 둘 몸 위로 떨어지는 느낌의 눈을 떴습니다. 그러자 방 안에 팔랑팔랑 뭔가가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었어요
'저건 돈이잖아?'
우와 대박 너무 신나서 떨어지는 돈을 당장 잡으려고 했죠. 그런데 제 팔과 사지가 꿈쩍도 하질 않는 거예요 고개만 겨우 움직여서 주위를 살펴보니 제가 관 속에 누워 있었어요.
일어나려고 몸부림은 쳐봤지만 정말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순간 허공에 날리던 돈들이 빨갛게 피로 물든 채 떨어지기 시작했고 피 묻은 돈 한 장이 얼굴에 떨어져 제 눈을 가렸습니다. 세상이 온통 시뻘겋게 보이는데 치우고 싶어도 팔은 안 움직이고 겁에 질려있던 순간 어떤 손이 그 돈을 집어치워 주는 겁니다.
'다행이다' 도움의 손길에 안도한 것도 잠시.. 제가 누워있는 관속에 어떤 여자가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내 돈 내놔!"
입에선 피를 뚝뚝 흘리는 여자는 자기 돈을 내놓으라며 죽일 듯이 제 몸을 졸랐어요.
목졸림에 힘이 빠지는 찰나 저는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끔찍한 악몽은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됐어요. 그런데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매일밤 제 목을 조르는 여자가 어디선가 보았던 사람 같았거든요
'분명.. 어디서 봤는데...'
저는 여자의 정체를 깨닫자마다 곧장 엄마가 있는 꽃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꽃이 시드는 이유
꽃집문을 열로 가게에 들어간 순간.. 가게 안에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엄마... 이게 뭐야? 꽃들이 다 왜 이래?"
가게 안에 있는 꽃들이 전부 시들시들하게 죽어있는 거예요.
"며칠 전부터 자꾸 꽃이 썩어.. 가게에 있으면 자꾸 소름이 돋고 기분이 영 안 좋아.."
"아니 엄마 나도 요즘에 계속 이상한 꿈 꾸거든. 아니 어떤 여자가 계속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게 꼭 진희 이모 같아 "
저는 엄마에게 지금껏 있었던 일을 다 말해주었습니다. 엄마가 장례식장 간 날 그때 무슨 이상한 상복 입은 남자가 왔던 일.. 그날부터 계속 진희 이모가 꿈에 나온 일들..
엄마는 그 남자 손님이 몇 살 같아 보였는지 생김새는 어땠는지 무슨 꽃을 샀는지 꼬치꼬치 캐묻더니, 그 손님이 진희 아줌마의 남동생 같다는 거예요
"상주라는 놈이 하루 종일 빈소에 없길래 이상하다 했더니, 여기에 왔다 간 거야? 그놈이 준 돈 지금 어디 있어?"
제가 가리킨 돈통에서 엄마는 의아한 표정으로 오만 원짜리를 찾아 꺼냈고, 찾은 돈을 보자 저는 할 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돈 뒷면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거든요
아줌마의 동생이 두고 간 이 피 묻은 돈.. 꿈속에서 저를 죽일 것처럼 달려드는 진희 아줌마, 그리고 자꾸 죽어나가는 꽃들 모든 게 너무 불길했습니다. 엄마와 전 작은 이모한테 바로 연락을 했습니다. 저희 작은 이모가 무속인이었거든요. 부적이라도 하나 붙일 생각으로 이모를 꽃집으로 불렀습니다.
비방을 도와준 꽃 포장
이모는 피 묻은 돈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어요.
"이거 고인의 돈이야 노잣돈이 없어서 자기 돈 찾아서 구천을 떠돌아다니네"
그러면서 남동생이 피 묻은 국화를 어디에 숨겼는지 아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엄마는 장례식에 왔던 사람들한테 희한한 얘기를 들었다면서 얼굴이 사색이 됐습니다. 장례식장 영정 사진 앞에 있는 다른 국화들을 다 치운 뒤 자기가 가져온 국화 한 송이만 나둔일, 그리고 그 관에 못 박는 사람들한테 이 꽃 좀 같이 묻어달라고 했다는 것들.
얘기를 들은 이모는 말했습니다.
"그놈이 지누나 돈 빼돌리고 해코지당할까 봐 꽃으로 비방을 한 것 같아"
그리고 제가 꽃을 포장해 주면서 본의 아니게 비방을 도운 것 같다는 거예요.
천도재를 지내야 하는 이유
"언니 그놈한테 천도재라도 지내면서 용서 구하라고 해! 안 그러면 진짜 큰일 나! 만약.. 한을 못 풀어주면.... "
심각하게 말하던 이모가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뒤집었습니다.
"그럼.. 너라도 데려가야지!!"
이모의 입에서 나온 건 진희 아줌마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곤 꿈속의 여자처럼 제 목을 조르며 자기돈을 내놓으라고 소리쳤죠
한참을 울부짖던 이모가 폭 꼬꾸라졌고 잠시 후 제정신을 찾더니,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고인을 빨리 안 달래주면 정말 저라도 데려갈 것 같다고 말이죠. 엄마는 바로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진희 아줌마 동생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영준아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진희 위해서 너 천도재를 지내야 된대!"
"아니 천도제 지낼 돈이 어딨어? 살아있을 때 나한테 잘해줬어도 제사를 해줄까 말 깐데!"
진희 아줌마는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시고 남편도 사고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어린 딸을 빼곤 남동생이 유일한 혈육이었는데 그 동생은 맨날 사업을 한답시고 누나 돈만 뺏어가기 바빴던 거죠. 아줌마가 말기 암 선고를 받았을 때도 병간호는커녕 병원까지 찾아와 지갑을 털어갈 정도로 망나니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누나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어린 조카 앞으로 남긴 유산까지 모두 뺏어가는 등 죽음을 애도해야 할 시간에 남동생은 누나의 노잣돈에만 관심이 있었던 거죠.
뜻밖의 부고소식
그런 패륜아를 대신해 엄마와 저는 천도재를 지냈습니다.
"진희야.. 우리 수영이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 네 돈에 전혀 욕심내지도 않았어..."
피 묻은 돈 오만 원을 태우면서 진희 아줌마의 원통함이 풀리길 기도했습니다. 그날 이후 아줌마가 더 이상 제 꿈에 나타나질 않길래 그래도 한이 좀 풀리셨나 보다 했어요. 그런데요. 얼마 후 생각지도 못한 부고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줌마의 남동생이 자다가 돌연사를 했다는 거예요
아내가 아침에 깨우려고 하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돌아가셨을 때 자세가 정말 특이했는데 그 넓은 침대 한가운데에 어깨를 한껏 좁힌 차렷 자세로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합니다.
마치 제가 꿈에서 꽉 끼어 있었던 관에 들어간 것처럼 말이에요. 더 기묘한 건 아주 무거운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그 동생이 누워있던 침대 매트리스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건 혹시 남동생이 누나에게서 훔쳐간 돈의 무게.. 극악무도한 패륜을 저지른 욕심과 죄의 무게가 아니었을까요?
-FIN-
꽃을 든 남자_이모저모
어느 집에나 가족인데 가족 같지 않은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꽃집에 갔을 땐 어디선가 비방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듣고 작정을 하고 간 것 같습니다.
피 묻은 국화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서 무속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꽃이 문제가 아니라 꽃에 묻어있는 남동생의 피가 더 중요한 핵심이라고 합니다.
피가 묻은 꽃을 입관을 한 것이 핵심인데 이것을 시신 위에 둠으로써 남동생도 같이 죽은 것처럼 위장해서 남동생 역시 죽은 것처럼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그런 기운을 인위적으로 만듦으로써 누나 돈을 더 빼돌리기가 쉬웠다고 하네요
황당한 건 누나의 사망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나타나서 죽은 매형의 사망보험금부터 조카가 나중에 낼 대학등록금까지 모두 빼돌렸다고 합니다. 또 몰래 누나의 집까지 찾아가서 돈 될 만한 물건들은 다 가지고 나오는 것도 모자라 사연자에게 포장값으로 쥐어준 5만 원도 빈소에 있던 부조금이었다고 하네요. 하아.... 할많하않
스토리가 그래도 권선징악으로 끝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심야괴담회 96화 김아영 씨의 꽃을 든 남자는 42개의 촛불이 켜졌습니다.